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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游记韩语介绍

作者:佚名    文章来源:本站原创    更新时间:2016/3/8

西游记韩语介绍
서유기(西遊記)西游记韩语
아주 오래 전, 화과산(花果山)이라는 산이 있었다. 산 위에는 ‘신선의 돌’이라 불리는 돌이 있었는데 태양과 달의 정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어느 날 이 돌이 쪼개어 지더니 가운데에서 돌 원숭이 한 마리가 튀어 나왔다. 이 돌 원숭이는 원숭이 무리와 함께 산 가운데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는데, 무의식 중에 한 줄기의 폭포가 산 정상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을 발견하였다. 용감한 돌 원숭이는 폭포를 비집고 들어갔고 그 안에 넓고 조용한 동굴을 발견하였다. 원숭이들은 모두 돌 원숭이를 왕으로 추대하였고, 그를 아름다운 원숭이 왕이라 칭하였다. 이 원숭이 왕은 불로장생하였고, 화과산(花果山)을 멀리 떠나 신선의 도를 찾아갔다. 어느 나무꾼의 안내로 그는 영대방척산(靈臺方寸山)에 이르렀다. 수보제조사(须菩提祖师)는 그를 제자로 삼고 손오공(孫悟空)이라는 이름을 하사 하였다.

옥황상제는 태백금성(太白金星)의 건의를 받아들여 손오공을 하늘의 천궁에 불러들여 말을 키우는 필마온(弼馬温)이라는 벼슬을 주었다. 복숭아 모임이 있던 날 손오공은 신선의 술을 모두 마셔버리고, 태상노군(太上老君)의 단방(丹房)에 들어가 조롱박의 금단(金丹)을 모두 먹어 버린 후 그는 수렴동(水帘洞)으로 돌아왔다. 옥황상제는 손오공을 처형할 것을 명하였으나, 손오공은 태상노군(太上老君)의 선단을 이미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에 칼로 찌르고 도끼로 내리치며, 번개로 치고 불로 태워도 손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태상노군(太上老君)은 손오공을 팔괘(八卦)의 화로에 집어 넣고 49일 동안 불을 때웠다. 태상노군(太上老君)은 손오공이 이미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손오공은 아직 살아있었을 뿐 아니라 두 눈이 멀쩡히 뜨고 있었다. 손오공은 화로를 뛰쳐나왔고, 천궁은 혼란에 빠졌다. 옥황상제는 속수무책이였기 때문에 서쪽 하늘의 석가모니에게 부탁을 하였다. 손오공은 결국 무한한 불법(佛法)의 석가모니를 당해내지 못하고, 아무리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구름인 권두운(筋斗雲)을 타고 벗어나려 해도 석가모니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석가모니는 손오공을 오행산(五行山) 아래에 가두었고, 그는 그 곳에 500년간 갇히게 되었다.

500년 후는 바로 당태종(唐太宗599~649) 이세민(李世民)의 시기였다. 늙은 승려인 현장(玄奘602?~664)은 불교의 뜻을 깨닫고 서쪽으로 가 불경을 가져오기로 결심한다.

당태종(唐太宗)은 직접 그를 배웅하였고, 현장(玄奘) 법사를 황제의 아우로 칭하였다. 그리고 삼장(三藏)이라는 법명을 하사하고 장안성 바깥까지 배웅하였다. 삼장은 길을 가는 길에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렸으며, 어느 날은 말을 타고 밤에 쌍차령(双叉岭)을 넘는 도중 호랑이 마왕의 부하에게 생포된다. 이때 태백금성(太白金星)이 나타나 삼장을 구출을 하였고,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며칠 후에 삼장은 양계산(两界山)에 이르게 되었다. 삼장이 봉인을 뜯자 손오공이 산을 부수고 나타났다. 삼장은 손오공을 제자로 삼고 행자(行者)라 칭하며 함께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간다. 길을 가는 도중 2명의 제자를 더 받아들이니 하나는 저팔계(猪八戒), 다른 하나는 사오정(沙僧)이었다. 이 4명의 일행은 1필의 백마와 함께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함께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9,984건의 위험을 겪은 끝에 구사일생으로 불경을 얻게 되니 그 공덕이 사방에 가득하였다. 삼장은 전단공덕불(旃檀功德佛)에, 손오공은 투전생불(斗战胜佛), 저팔계는 쟁담사자(净坛使者), 사오정은 금신라한(金身羅漢), 백마는 용의 몸인 팔부천룡(八部天龍)가 되었으며, 손오공은 도를 깨달으니 머리의 띠는 저절로 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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